서울 삼성동 코엑스 리모델링을 둘러싼 전시·MICE 업계와 한국무역협회·코엑스 간 갈등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전시장 면적의 상당 부분이 약 1년 6개월간 운영을 중단할 것이라는 계획에 반발해 업계가 집회까지 열며 우려를 제기하는 가운데, 코엑스는 메가박스 코엑스점 상영관을 컨퍼런스 공간으로 활용해 행사 기능 공백을 줄이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이 조치가 리모델링 기간 동안의 공백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전시산업 전반의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코엑스와 메가박스중앙은 8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전시컨벤션 시설 리모델링 기간 중 영화관을 활용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코엑스는 리모델링 기간 동안 메가박스 코엑스점 내 대형 상영관 9개를 컨퍼런스 및 행사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확보 좌석은 총 1,892석이다. 공사로 운영이 중단되는 컨퍼런스센터 수용 규모 2,216석의 85.3%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코엑스의 설명이다. 대형 LED 스크린과 음향·영상 인프라를 갖춘 상영관을 활용해 발표 중심의 고품질 컨퍼런스와 복합 이벤트를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코엑스의 이번 행보는 리모델링으로 인한 행사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코엑스는 2027년 7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서울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과 연계해 전시장 리모델링을 추진한다.
이 기간 전시장 B홀과 D홀, 그랜드볼룸, 아셈볼룸, 오디토리움 등은 정상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등 코엑스마이스클러스터 회원사와 협업해 인근 호텔 내 회의장·연회장을 활용하는 등 행사장 수요 분산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엑스는 “전체 시설이 전면 마비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전시공간은 계속 운영되며, 영화관과 호텔을 포함한 주변 인프라를 묶어 공백을 줄이겠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
전시업계가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은 ‘회의 좌석 부족’만이 아니다. 업계는 A홀과 C홀을 포함한 주요 전시장 운영 중단이 약 1년 6개월간 이어질 경우, 국내외 전시회가 축소되거나 수도권·지방 다른 전시장으로 분산되면서 기존 비즈니스 동선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전시주최자협회 등 전시·MICE 관련 4개 단체는 전시주최업, 전시디자인업, 전시서비스업 등 전시 관련 업계 매출 피해를 합산할 경우 약 4조8,851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참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전시회를 통해 창출해 온 상담·계약 실적 감소분까지 포함하면, 업계는 피해 규모가 최대 9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추정도 제시했다. 이 수치는 정부의 공식 추계가 아닌 업계 자체 분석이라는 점에서 검증이 더 필요하지만, 리모델링이 전시 생태계에 미칠 파장을 둘러싼 업계의 위기감이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시장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부스를 설치하고 장비와 시제품을 들여와 바이어와 참관객을 만나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기능해 왔다. 영화관은 좌석·음향·스크린 등 발표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갖춰 컨퍼런스와 강연에 강점이 있다. 반면 대형 장비 반입, 부스 설치, 장치 시공, 물류 동선 확보 등 전시장 고유의 기능을 온전히 대신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메가박스 9개관 1,892석은 컨퍼런스 기능 공백을 상당 부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업계는 “전시산업의 생존 기반은 좌석 수가 아니라 전시면적과 일정의 안정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회의와 발표는 일정 부분 대체 가능하더라도, 실제 제품 전시와 현장 상담을 위한 물리적 공간이 줄어드는 문제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기획] 코엑스가 꺼낸 ‘영화관 카드’… MICE 업계 갈등 풀 열쇠 될까 - 산업종합저널 FA](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6/08/thumbs/thumb_520390_1780898426_89.png)
조상현 코엑스 사장(왼쪽)과 남용석 메가박스중앙 대표는8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영화관을 활용한 전시컨벤션 협력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수도권 MICE 지형 변화도 함께 고려해야 할 변수다. 최근 몇 년 사이 수도권 MICE 인프라는 코엑스 중심 구조에서 점차 다핵 체제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양 킨텍스는 제1·2전시장에 이어 제3전시장 건립을 추진하며 초대형 박람회 유치가 가능한 대형 전시장으로 확장 중이고, 인천 송도컨벤시아는 국제회의와 기업행사에서 연간 1천 건 이상의 행사를 치르며 ‘실적 중심’ 거점으로 자리잡아 왔다.
수원컨벤션센터 일대는 국제회의복합지구로 지정되면서 쇼핑·호텔·문화시설을 아우르는 복합 MICE 클러스터로 육성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코엑스 리모델링 기간 동안 일부 전시·회의 수요가 킨텍스, 송도, 수원 등 다른 전시장으로 분산될 여지가 생긴 셈이다.
다만 전시회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서, 업계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참가 기업과 바이어의 접근성, 인근 숙박·상권, 교통, 개최지 브랜드 인지도, 기존 참관객의 방문 패턴 등이 모두 얽혀 있어, 개최지를 변경하면 주최사 입장에서는 비용 구조와 수익성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이동에 따른 추가 부담과 효과를 따져 행사 참가 자체를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코엑스에서 열리던 전시회가 타 지역으로 옮겨가더라도, 모든 참가사가 그대로 따라갈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코엑스의 메가박스 협력은 이런 상황에서 행사 기능의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첫 번째 구체적 대응으로 평가된다.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영화관·호텔·클러스터 등 인근 자산을 활용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용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영화관 상영관을 컨퍼런스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기존 시설보다 대형 스크린·음향 시스템 측면에서 강점이 있어, 발표 중심의 국제회의나 콘퍼런스, 시사회 성격의 비즈니스 행사에는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유니크베뉴를 MICE 인프라로 편입하는 실험으로서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력만으로 논란의 핵심이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업계가 문제 삼는 부분은 리모델링 자체보다, 전시장 폐쇄 규모와 기간, 공사 방식, 대체 수단을 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 공개와 협의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전시·MICE 관련 단체들은 공개 협의체 구성을 통해 공사 일정과 도면, 공사 구간별 운영 가능 면적, 단계적 공사 여부 등을 함께 검토하자고 제안해 왔다. 안전을 이유로 일정 기간 운영 중단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멈출 것인지”를 놓고는 보다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코엑스는 한국 MICE 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중소·중견기업들이 신제품을 소개하고 해외 바이어를 만나는 창구 역할을 해 왔다.
리모델링을 통한 시설 개선과 안전 확보는 장기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는 과제다. 동시에, 이 과정이 국내 전시·MICE 생태계와 수출 플랫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또한 중요한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메가박스 협력과 CMC 기반 분산 운영 구상은 코엑스가 내놓은 첫 해법이다.
앞으로 전시장 폐쇄 범위와 기간, 단계적 공사 가능성, 대체 전시장 연계 방안 등을 둘러싸고 업계와 코엑스, 무역협회, 관계부처가 어떤 합의점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이번 리모델링이 갈등의 불씨가 될지, 또는 MICE 산업 체계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지가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