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저가 수입재 공세와 탄소 배출 규제 압박 속에서 포항과 광양의 고로 공정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단순한 원가 절감을 넘어 공정 자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에서, 철강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탄소중립 전환을 지원하는 ‘K-스틸법(K-Steel Act)’ 시행령 제정안이 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법 시행일인 17일 발효를 앞두고 있다. 철강업계가 시장 중심 자율 경쟁을 넘어 정책 기반 구조 전환 모드로 들어가는 분기점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사이트] 철강산업 구조 전환 시동 건 ‘K-스틸법’, 자금·수요 연동이 성패 가른다 - 산업종합저널 에너지](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6/15/thumbs/thumb_520390_1781499039_32.jpg)
그래픽 = 산업종합저널 (생성형 AI 시각화)
컨트롤타워 신설과 특구 지정, 공정 전환의 뼈대 구축
시행령 제정안은 철강산업의 구조조정과 저탄소 전환을 국가적 과제로 격상하는 구체적 수단을 제시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범부처 기구로 신설해 5년 단위 기본계획을 심의하고, 관련 법·제도 정비를 총괄하도록 한 것이다. 탄소중립과 통상 이슈를 산업통상자원부 단일 과제가 아닌 국가 조정 사안으로 다루며, 수소·전력 인프라 구축과 구조조정을 연동하는 패키지 논의를 뒷받침할 컨트롤타워를 마련한 셈이다.
저탄소철강 특구 제도 역시 핵심 장치다. 산업 집적도와 기반시설 확보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특구를 지정하고 인허가·인프라·세제 지원을 집중 투입할 수 있는 근거를 뒀다. 포항과 광양을 비롯한 주요 권역을 저탄소·고부가 전환 거점으로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국내 철강 공급망 재편 속도와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철강 전용 라벨 도입… 공공조달 연동이 승부처
산업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축은 ‘저탄소철강 인증 제도’다. 그동안 국내 철강업계는 철강 전용 기준이 없어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저탄소제품·환경성적표지 제도를 우회 활용하며 탄소 감축 성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새 인증 제도는 생산 방식과 온실가스 배출·감축량을 기준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기준을 고시하고, 지정기관이 심사하는 철강 전용 라벨이다.
다만 실제 산업적 파장은 공공조달 및 금융·세제 지원과의 연동 강도에 달려 있다. 일본이 그린강재(Green Steel) 개념을 도입해 그린구매법 개정으로 저탄소 철강을 공공조달 대상에 포함시키며 초기 수요를 창출하는 반면, 한국은 조달·인증·설계 기준이 여전히 분절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저탄소철강 인증이 단순한 꼬리표에 머물지 않고 공공조달·녹색금융과 연동된 수요 창출 기제로 작동해야 기술 전환 인센티브가 살아난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스크랩 생태계 육성과 구조조정 마찰 최소화
전기로 비중 확대와 수소환원제철 전환을 위해서는 고품질 철스크랩(scap)의 안정적 수급이 필수적이다. 시행령 제정안은 ‘재생철자원 가공전문기업 지정 제도’를 도입해 부지와 시설·장비 요건을 갖춘 기업을 스크랩 거점으로 육성하는 신호를 보냈다. 고로 중심 생산 체계를 전기로·저탄소 공정으로 옮겨 가기 위한 물리적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다.
아울러 공정거래법 특례를 통해 사업재편 승인 기업의 공동행위와 정보교환을 일정 범위 내에서 허용하고, 기업결합 심사 특례와 연계해 과당 경쟁을 줄이는 구조조정 경로를 열었다. 만성적인 공급 과잉에 시달려 온 철근·후판 세그먼트에서 수익성과 탄소 효율을 유지하는 방향의 인수합병(M&A)이나 라인 축소를 뒷받침하는 장치로 평가된다. 주요 공동행위·기업결합 특례가 2028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만큼, 향후 3~4년이 공급 조정과 공정 전환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구조조정의 핵심 기간이 될 것으로 진단된다.
수소환원·전기료 지원 누락… 2막은 예산과 수요 연동
다만 제도적 골격이 갖춰졌음에도 업계의 최대 요구 사항인 수소환원제철 전환 비용 지원과 전기요금 부담 완화 조치는 시행령 제정안에서 빠졌다. 수소·전력 인프라 확충과 전환 설비 투자(CAPEX) 보전을 위한 직접 지원, 에너지 요금제 개편은 별도의 예산·세제 논의로 넘겨졌다. K-스틸법이 종이법을 벗어나 최소한의 작동 매뉴얼을 갖췄음에도 ‘반쪽 출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K-스틸법과 시행령은 철강산업의 탈탄소·고부가 전환을 위한 제도적 틀을 깔아놓은 1막에 가깝다. 2막은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예산과 요금제, 공공조달 기준을 통해 이 틀에 얼마나 많은 자금과 수요를 실어 나르느냐에 달려 있다. 정책 자원이 어디에, 어떤 속도로 집중되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철강 밸류체인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뒤로 밀릴지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