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사실상 전쟁 종료를 선언하는 양해각서(MOU)에 합의하면서 중동 정세가 큰 전환점에 섰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고 이란산 원유 수출 재개,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60일간의 협상 틀이 마련되면서, 총성과 미사일이 오가던 전장은 외교와 경제의 무대로 서서히 옮겨가는 분위기다. 다만 문서의 성격은 ‘완결판 평화협정’이라기보다 조건부 휴전과 협상 일정표에 가깝다. 이스라엘과 이란 내부의 강경파, 핵 문제, 통행료를 둘러싼 갈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앞으로 두 달이 중동과 세계경제 모두에 가장 험한 구간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최근 한국국제금융센터가 잇따라 내놓은 ‘국제금융속보’와 ‘Brief’ 자료는 미·이란 합의를 세 갈래 틀 안에서 정리한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이란산 원유 공급 재개, 핵·제재를 둘러싼 60일 협상 착수다.
“전쟁은 오늘 밤부터 끝”…해협 60일간 ‘통행료 0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한국 시각) 자신의 SNS(트루스 소셜)에 “이란과의 합의가 완료됐다”며 호르무즈 해협의 ‘무료 통행’과 미 해군 봉쇄 해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서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는 미국·이란 간 평화 합의가 이뤄졌으며, 레바논을 포함한 전선에서 군사작전을 즉각·영구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이란 측도 최고국가안보회의 발표를 인용해 “모든 전선에서의 전쟁이 오늘 밤부터 즉시 영구적으로 종식될 것”이고, 미국의 봉쇄 조치도 완전히 풀릴 것이라고 확인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러한 정치적 합의의 중심축을 세 가지로 본다. 호르무즈 해협의 빠른 정상화, 이란의 원유 수출 허용, 앞으로 60일 동안 이어질 핵 프로그램 관련 협상이다. 미국 측 고위 당국자 설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 이란의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종전 선언과 이후 협상 틀을 담은 문서에 서명했으며, 이란이 핵 사찰과 핵무기 개발 포기, 역내 극단주의·테러 지원 중단에 얼마나 협력하는지에 따라 제재 완화 속도와 폭이 달라지는 ‘조건부 완화’ 구조다.
14개 조항이 가리키는 것…“총은 멈추지만 정치·경제 싸움은 남았다”
세부 합의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블룸버그가 입수한 페르시아어 초안에 담긴 14개 조항을 보면 협상의 윤곽은 어느 정도 읽힌다. 레바논까지 포함한 전선에서의 전쟁 영구 종식 선언, 서로에 대한 무력 사용·위협 중단, 60일 이내 최종 합의 도출을 목표로 한 후속 협상 개시, 해상 봉쇄 해제와 상선 통행 정상화, 이란 재건·경제 개발 프로그램 설계, 제재·동결 자산 해제와 핵 협의 메커니즘 등이 골자를 이룬다.
다만 돈이 걸린 부분에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이란 동결 자산을 얼마나, 어떤 속도로 풀지에 대해 일부 외신은 250억 달러 수준의 해제를 언급하고, 다른 매체는 구체적 규모를 적시하지 않은 채 협상 진전에 따른 단계적 해제 가능성만 거론한다. 익명의 미 정부 인사들은 “동결 자산 절반을 즉시 풀어준다”는 보도에 선을 긋고 있어, 인센티브의 정확한 크기와 타임라인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증시는 안도, 유가는 하락…그래도 ‘전쟁 전 유가’로는 못 돌아간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해상 봉쇄 해제 소식에 금융시장은 먼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S&P500과 유럽 Stoxx600 지수는 종전 기대와 반도체주 강세에 힘입어 동반 상승했고,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83달러 수준까지 내려갔다. 안전자산 선호가 누그러지면서 달러화 지수는 소폭 약세를 보였고, 미 10년물 국채금리도 유가 하락과 인플레이션 우려 완화에 따라 내렸다.
그렇다고 바로 ‘배럴당 60달러 시대’로 돌아가는 그림은 아니다. 주요 외신과 분석들은 기뢰 제거와 항만 혼잡 해소에 시간이 걸리고, 핵·제재·지역 안보라는 뿌리 깊은 갈등 요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까지 단숨에 내려가긴 어렵다고 본다. 이란이 필요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다시 압박할 수 있다는 점도, 에너지 시장에 위험 프리미엄을 남겨두는 요소다.
“통행료는 두 달간 안 받는다”…그 뒤부터는 ‘요금 전쟁’ 가능성
이번 합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둘러싼 메시지다. 미국은 MOU가 효력을 갖는 60일 동안 통과 비용을 받지 않는 ‘toll-free’ 상태를 약속했고, 이런 방식이 이후 최종 합의에도 반영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해협이 무료 통행으로 다시 열린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통행료를 직접 매기지는 않더라도 이란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선언 직후부터 “무료 통행”의 범위와, 시한 종료 후 통과비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양측 입장이 미묘하게 갈리는 모습이다. 이란이 협상 시한 이후 해협 통과비 징수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점도 숨기지 않고 있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관문이라는 특성상, 이 통행료·서비스료 문제는 협상 테이블 위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유가와 해운 보험료, 역내 물류비용에 직결되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최대 외교 성과”, 다른 쪽에겐 “이란에 유리한 거래”
해외 평가는 엇갈린다. 전쟁 이후 가장 큰 외교적 진전이자 세계 경제에 안도감을 주는 합의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미국·이스라엘·이란 내부에서는 회의적 시선도 만만치 않다.
미국 내 비판론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JCPOA와 비교해 이란에 더 관대한 거래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당시에는 이란의 핵 이행이 먼저였던 반면, 현재 체결된 MOU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 완화의 대가로 이란산 석유 수출을 선제적으로 허용하고 재건 기금, 제재 완화, 동결 자산 해제 규모도 더 크다는 지적이다. 핵물질을 해외로 반출하기보다 이란 내에서 희석·보관하는 방향이 거론되는 점도 논란거리다.
이스라엘 쪽에서는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능력과 역내 대리세력(헤즈볼라 등) 지원 문제가 문서에서 빠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문제 삼는다. 미국·이란 협상과는 별개로 이스라엘이 레바논 전선을 다시 두드릴 수 있고, 이 경우 60일 협상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란 내부에서는 파이다리 전선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미국과 손을 잡는 것 자체가 항복과 다름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협상 주도 진영은 전쟁을 끝내면서도 이번 합의가 대외적으로 ‘양보·굴복’으로 비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치적 과제가 됐다.
향후 60일, 어디서 판이 깨질 수 있나
두 보고서가 공통적으로 꼽는 향후 60일의 위험 요인은 세 가지다.
우선, 이스라엘과 이란 강경파의 돌발 군사행동이다. 레바논이나 다른 전선에서 국지전이 다시 터질 경우, 휴전과 협상 일정이 모두 흔들릴 수 있다.
두 번째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서비스료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란이 해협 개방의 대가로 각종 요금을 부과하려 들 경우, 미국과 걸프만 동맹국, 유럽까지 얽힌 마찰과 시장 불안이 재점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핵·제재 완화의 세부 설계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다. 60일은 우라늄 농축 수준, 제재 해제 속도, 재건 기금 구조, 역내 안보까지 한 번에 정리하기에는 촉박한 시간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란 내 강경파의 반발과 미국 의회의 정치 일정까지 감안하면 협상 기간 연장과 지연 전술이 교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에 들어오는 파장: 유가·물가·안보 ‘3중 변수’
한국 입장에서 이 MOU는 유가, 물가, 금융시장,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흔드는 변수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와 전쟁 완화는 유가를 누르는 요인이지만, 이란·이스라엘·강경파 움직임에 따라 위험 프리미엄이 언제든 다시 붙을 수 있다고 국제금융센터는 진단한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도 중동 정세와 에너지 가격 변화와 맞물려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미·이란 합의는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총성은 멈춘 대신 협상과 계산서가 오가는 60일짜리 시험 무대에 가깝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석유가 다시 양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지만, 앞으로 그 흐름의 속도와 비용, 안정성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년간 글로벌 에너지 질서와 금융 환경의 윤곽이 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