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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플라스틱 없는 선택지는 왜 매대에 없나

시민들은 정부·기업 책임 지목…플뿌리연대 “절대량 감축 목표와 다회용기 의무화 필요”

시민 다수는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일상에서 사용을 줄일 의사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줄이고 싶어도 줄이기 어려운 구조가 먼저 시민을 가로막고 있었다. 제품은 일회용 포장재에 담겨 판매되고, 다회용기와 리필 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깔려 있지 않았다. 탈플라스틱의 병목은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생산과 유통, 재사용 인프라의 공백에 가깝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슈] 플라스틱 없는 선택지는 왜 매대에 없나 - 산업종합저널 에너지
콘텐츠 연출 = 본지 (생성형 AI 기반)

국내외 17개 단체로 구성된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는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만 20~69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플라스틱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 5월 27일부터 28일까지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했다. 브리핑북은 이번 조사의 핵심 결과로 시민들이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사용 감축 의지도 높지만, 제도와 시스템 부족으로 실천이 막히고 있다고 정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3.6%는 플라스틱 오염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미세플라스틱 인체 검출이 불안하다는 응답은 81.7%,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1.3%였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도 74.3%로 높았다. 반면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적 실천을 한다는 응답은 49.1%에 그쳤다. 인식과 의향은 높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셈이다.

이 간극을 설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품 선택 구조였다. 응답자들이 일회용품을 쓰는 가장 큰 이유로는 “제품이 일회용 포장재로만 판매돼서”가 68.7%로 가장 높았다. 사용하거나 폐기할 때 문제가 되는 이유로는 “안 쓰려 해도 적절한 대안이 없다”는 응답이 49.0%로 1위를 차지했다. 많이 쓰는 일회용품도 생수와 음료 페트병 53.2%, 비닐류 50.8%, 식품 포장재 43.7%, 배달 음식 용기 39.7%, 음료 용기와 빨대 38.3% 등 먹고 마시고 사는 일상 영역에 집중돼 있었다.

이는 탈플라스틱이 단순히 개인의 생활 습관 문제로만 다뤄지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비자가 플라스틱 포장을 피하고 싶어도 매대에 놓인 제품 대부분이 일회용 포장재에 담겨 있다면 선택권은 좁아진다. 배달음식이나 행사장, 장례식장처럼 운영자가 용기 시스템을 정하는 공간에서는 개인이 다회용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어도 실제 선택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구호가 시민의 선의에만 기대는 순간, 실천은 금세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감축이 가장 시급한 산업군으로는 포장재와 소비재가 꼽혔다. 응답자들은 포장재 80.2%, 소비재 63.2%, 섬유 39.5% 순으로 감축 필요성이 크다고 답했다. 반면 플라스틱 사용이 반드시 필요한 산업군으로는 의료가 63.6%로 가장 높았고, 전기·전자 38.6%, 건설·건축 34.5%가 뒤를 이었다. 모든 플라스틱을 같은 방식으로 줄일 수 없으며, 포장재와 소비재처럼 대체 가능성이 큰 영역부터 우선 감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나프타 수급 차질 문제도 플라스틱 이슈와 함께 인식되고 있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88.0%는 나프타 수급 차질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고, 76.6%는 이 문제가 일상생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고 했다. 나프타 위기 이후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는 응답도 71.9%였다. 브리핑북은 이를 두고 플라스틱 문제가 환경을 넘어 자원안보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시민들은 변화의 주체로 개인보다 정부와 기업을 더 많이 지목했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의 주요 주체를 묻는 문항에서 정부를 꼽은 응답은 64.4%, 기업을 꼽은 응답은 58.8%였다. 현행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응답은 28.6%에 머물렀다. 시민들은 개인의 분리배출이나 소비 습관 변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정부 규제와 기업의 생산·포장·유통 책임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다회용기와 리필 시스템에 대한 인식은 높았지만 실제 이용 경험은 절반 수준이었다. 응답자의 90.9%는 다회용기와 리필 시스템을 알고 있다고 답했지만 실제 이용 경험은 54.9%였다. 공간별 차이도 컸다.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된 카페와 식당에서의 다회용기 사용 경험은 77.8%였지만, 배달음식 다회용기 옵션 선택은 28.8%, 장례식장 다회용기 이용은 22.0%, 야구장 등 스포츠 경기장 이용은 21.1%에 그쳤다. 규제나 시스템이 작동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 사이에서 시민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재사용 시스템이 마련될 경우 행동 변화 가능성은 높았다. 응답자의 79.1%는 재사용 제도가 마련되면 일회용품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재사용 확산에 필요한 조건으로는 위생과 살균 공정에 대한 신뢰 확보가 52.1%로 가장 높았다. 이용 인센티브와 경제적 혜택 강화 38.1%, 재사용 접근성과 활용 업종 확대 37.9%, 플라스틱 감축과 순환경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36.0%도 주요 조건으로 꼽혔다. 다회용·리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주변 매장이 없다는 응답이 55.3%로 가장 높았다. 시민들이 재사용 시스템 자체를 거부한다기보다 믿고 쓸 수 있는 제도와 접근 가능한 인프라를 요구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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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린피스·풀뿌리연대>

플뿌리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플라스틱 감축 목표도 문제 삼았다.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4월 28일 제18차 국무회의에서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3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플뿌리연대는 이 목표가 배출전망치 기준 감축이라며, 실제 플라스틱 폐기물 절대량을 줄이는 목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생전망치 대비 감축이라는 방식으로는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 자체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체는 정부에 세 가지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 목표를 절대량 기준으로 바꾸고 명확한 이행 경로를 세우는 것, 후퇴하거나 중단된 일회용품 규제를 복원하고 사용·판매·생산 금지와 경제적 유인책을 포함한 감축 정책을 시행하는 것, 다회용기 사용을 권고가 아니라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장례식장, 스포츠경기장, 영화관, 구내식당처럼 운영 주체와 공간이 비교적 분명한 ‘닫힌 공간’부터 다회용기 사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번 조사와 기자회견이 던지는 메시지는 선명하다. 시민들은 플라스틱 오염을 모르지 않는다. 줄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플라스틱 없는 선택지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에게 더 강한 의지를 요구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일회용 포장 중심의 생산·유통 구조를 바꾸고 다회용기와 리필 시스템을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이다. 탈플라스틱 사회의 출발선에 시민은 이미 서 있다. 남은 질문은 정부와 기업이 그 길을 실제로 열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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