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을 노동계 요구 수준인 16.3% 인상할 경우 연간 일자리 44만 3,000개가 줄고,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3%(약 8조 1,000억 원) 감소할 수 있다는 민간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민간 부문의 총혁신투자(R&D 투자) 역시 연간 0.3%(약 4,000억 원) 축소될 것으로 추정됐다. 최저임금이 단순한 임금·고용 갈등 이슈를 넘어, 혁신 투자와 산업 구조에까지 파급 효과를 미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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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파이터치연구원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5%, 10%, 16.3%로 각각 가정해 경제 전반의 변화를 모의실험한 결과를 공개했다. 5% 인상 시에는 일자리 15만 1,000개와 실질 GDP 2조 6,000억 원, 10% 인상 시에는 일자리 28만 8,000개와 실질 GDP 5조 1,000억 원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상 폭이 커질수록 고용과 성장, 혁신에 대한 부정적 충격이 단순 비례가 아니라 더 큰 폭으로 확대되는 구조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소기업이 먼저 R&D 줄이고… 중간재 가격이 올라 일반기업까지 위축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 충격은 소기업에서 먼저 시작된다. 최저임금에 직접 노출된 소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인원 감축과 함께 신제품 개발, 연구개발(R&D) 등 혁신지출부터 줄이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최저임금을 16.4% 인상했을 때 소기업의 노동 수요가 15.03% 급감하고, 자본 수요와 혁신투자가 1.09%씩 감소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 과정에서 소기업 생산량이 줄어 중간재 공급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중간재 가격이 약 5.7%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중간재를 납품받아 최종재를 생산하는 중·대기업은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중간재 수요를 약 5.6%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 결과 일반기업의 자본 수요와 혁신투자는 각각 0.25%씩 줄고, 최종재 생산량과 이윤 역시 같은 폭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인상이 직접적으로는 소기업의 인건비와 고용에 작용하지만, 실제 경제 전반에서는 하도급 구조와 중간재 가격 변동을 통해 중·대기업의 투자와 혁신 활동까지 함께 위축시키는 경로가 작동하는 셈이다.
이미 ‘중위임금 60%’ 넘는 한국… 추가 인상 여력은
연구 측은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이미 국제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정규직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60.5% 수준으로, 독일(50.6%), 일본(46.8%), 미국(25.0%)보다 높다. 연구진은 이런 구조에서 두 자릿수 인상이 반복될 경우,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개선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넘어 고용 감소, 혁신투자 축소, 설비투자 위축 등 부정적 영향이 누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금 여력이 크지 않은 소기업·영세기업일수록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기존 인력을 줄이고, R&D·신사업 투자를 우선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연구원은 분석했다.
국제학술지에 실린 일반균형모형… 2018년 급등 사례에서 검증
이번 분석은 국제학술지에 게재 승인된 일반균형모형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파이터치연은 한국 중소기업의 R&D 지출, 최저임금 인상률, 기업 규모 분포, 중간재 가격 구조 등을 실제 통계에 맞춰 보정한 동태 일반균형모형을 사용했다. 이 모형은 라정주 원장이 국제 학술지 ‘아시아-태평양 경제 문헌(Asian-Pacific Economic Literatu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검증받은 바 있다.
해당 논문은 2018년 16.4%라는 이례적으로 큰 최저임금 인상 이후 한국에서 소기업 R&D 지출과 혁신투자가 어떻게 변했는지 계량적으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 당시 인상률을 반영하면 소기업 혁신투자가 1.09%, 전체 혁신투자가 0.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시나리오 분석은 이 모형에 최신 데이터를 반영하고 내년도 인상률(5%, 10%, 16.3%)을 대입해, 실질GDP·고용·혁신투자 등 거시 변수별 변화를 다시 계산한 것이다.
임금 구조와 노동시간도 변화… 소비·투자 모두 압박
최저임금 급등은 고용 규모뿐 아니라 임금 구조와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시뮬레이션됐다. 모형 기반 분석에서 일반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시장 조정 과정에서 약 0.26% 낮아지고, 노동 공급시간은 0.8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저임금 수준에 묶이는 노동자 비중은 늘어, 임금 분포가 “최저임금 구간과 그 위 구간”으로 양분되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신호도 나왔다.
자본 가격(이자율)은 장기 균형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전체 자본 수요와 설비투자는 각각 0.25%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부 개선되지만, 일반노동자의 임금 감소와 기업 이윤·자본소득 축소 효과를 모두 감안하면 최종재 소비는 0.27%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적으로는 일부 계층의 소득 개선 효과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투자·고용·소비 전반의 약화를 동반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 연구는 ‘혁신 촉진’ 사례도… 한국형 산업 구조가 변수
해외 연구 중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기업 혁신을 촉진한다는 결과도 적지 않다. 중국 기업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들은 임금 압력이 비효율적 인력을 줄이고 자동화·설비투자를 앞당겨, 생산성과 혁신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파이터치연은 이러한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효과가 나타나는 경로와 방향이 국가별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소수 대기업과 다수 중소 협력업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한국식 ‘하도급 중심’ 산업 구조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먼저 소기업의 인건비와 혁신투자를 압박하고, 중간재 가격 변동을 통해 중·대기업까지 압박하는 경로가 더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최저임금 인상이라도 중국·미국·유럽과 한국에서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기업 규모·노출도 반영한 차등 인상론 제기
파이터치연은 정책 대안으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할 때 노동자 생계비와 고용 효과뿐 아니라 혁신투자와 산업 경쟁력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최저임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기업·영세기업과 상대적으로 대응 여력이 있는 중·대기업을 구분해 인상 충격을 조절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소기업의 경우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과 연동한 인상률 설정 등, 인건비 급등을 완충할 장치를 두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처럼 동일한 인상률을 모든 기업에 일괄 적용할 경우, 인건비 충격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업에 집중되면서 고용·투자 축소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설명이다.
중간재 가격 인상 반영한 R&D 세제·금융지원 필요
소기업과 하도급 관계에 있는 일반기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간재 가격 상승을 감안해, 혁신투자를 유지·확대할 수 있도록 세제와 금융 측면의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일반기업의 혁신투자는 최저임금의 직접 대상은 아니지만, 소기업 생산량 감소→중간재 가격 상승이라는 간접 경로를 통해 위축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률과 연동해 R&D 세액공제율을 조정하거나, 정책금융·기술보증 등을 통해 혁신투자 재원을 보완해 주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을 전적으로 기업 내부에서 흡수하도록 하기보다, 혁신투자 부분에 대해서는 공적 지원을 통해 일부 상쇄할 수 있다는 논리다.
연구의 의미와 한계… “이제는 혁신·산업 구조까지 포함한 최저임금 논의 필요”
이번 파이터치연 분석은 최저임금 인상 논의를 임금과 고용이라는 전통적 축에서 혁신·하도급 구조·산업 경쟁력이라는 더 넓은 프레임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시에, 모형 분석 특성상 전제와 파라미터 설정에 따른 한계도 분명하다. 현실 경제는 모형보다 복잡하고, 경기 상황·정책 조합·노동시장 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통계를 기반으로 한 일반균형모형이 “최저임금 급등→소기업 혁신투자 축소→중간재 가격 상승→일반기업 투자·생산 위축”이라는 경로를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은 향후 공론장에서 검증과 반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와 정부, 노동계·경영계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느 부분에 동의·이견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논의의 깊이와 방향도 달라질 전망이다.
파이터치연구원은 2016년 설립된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가업상속세 인하, 국토보유세 기반 기본소득, 복수의결권 도입, 법인세 감면과 고용, 주택가격과 혼인, 최저임금과 혁신투자 등 다양한 정책 이슈를 일반균형모형으로 분석해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해 왔다. 이번 최저임금·혁신투자 연구 역시 한국형 산업 구조와 하도급 생태계를 반영한 계량 분석이라는 점에서, 향후 최저임금 심의와 산업정책 설계 과정에서 논쟁과 참고자료를 동시에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