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기대가 살아나면서 중견기업의 경기 전망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 생산과 자금 사정까지 주요 지표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중소 제조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설비 가동률은 소폭 올랐지만 제조업 경기전망은 오히려 떨어졌고, 기업 절반 이상은 여전히 매출 부진을 가장 큰 경영 애로로 꼽았다. 첨단·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반등의 불씨는 살아났지만 그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번졌다고 보기는 이른 상황이다.
중견기업 경기전망 4분기 연속 상승…제조업이 반등 견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중견기업 8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3분기 경기전망지수는 87.6으로 전분기보다 4.8포인트 올랐다. 4분기 연속 상승세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큰 증가 폭이다.
반등을 이끈 것은 제조업이다. 중견 제조업 경기전망지수는 84.4로 전분기보다 7.4포인트 뛰었다. 비제조업도 90.6으로 2.5포인트 상승했다. 기준선인 100에는 여전히 못 미치지만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 개선 기대가 뚜렷해졌다는 의미다.
수출 전망도 강하게 반등했다. 중견기업 전체 수출전망지수는 96.0으로 전분기보다 6.1포인트 올랐고, 제조업은 96.8로 7.4포인트 상승했다. 내수전망지수 역시 90.1로 3.2포인트 개선됐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고개를 들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AI 서버·고성능 반도체 기대감…전자부품 수출전망 107.7
수출 기대를 끌어올린 중심에는 전자부품·통신장비가 있다. 해당 업종의 수출전망지수는 107.7로 전분기보다 20.0포인트 급등했다. 기준선 100을 넘어선 만큼 수출이 개선될 것으로 보는 기업이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보다 많아졌다는 뜻이다.
내수전망지수도 103.7을 기록해 제조업 가운데 유일하게 100을 웃돌았다. 화학물질·석유제품 수출전망 역시 99.0으로 13.4포인트 올랐다. 중견련은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K-소비재를 중심으로 수출 호조 기대가 커지면서 제조업 전반의 심리도 개선된 것으로 분석했다.
경기 기대는 생산과 수익성, 자금 사정으로도 번졌다. 생산전망지수는 92.5로 3.7포인트 상승했다. 영업이익전망지수는 89.8로 5.8포인트, 자금전망지수는 96.2로 5.2포인트 각각 올랐다. 단순히 수출 주문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넘어 기업 경영의 주요 축이 함께 개선되는 모습이다.
중소기업 전체 전망은 올랐지만…제조업은 오히려 2.4p 하락
중소기업의 체감경기는 보다 복잡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06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8월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는 80.0으로 전월보다 1.8포인트 올랐다. 그러나 기준선 100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전체 지수가 상승한 배경에는 비제조업 개선이 자리 잡고 있다. 비제조업 전망지수는 80.0으로 3.7포인트 올랐다. 서비스업이 77.5에서 81.8로 4.3포인트 상승했고, 건설업도 70.3에서 71.1로 소폭 개선됐다.
제조업은 정반대였다. 8월 중소 제조업 경기전망지수는 80.1로 전월보다 2.4포인트 하락했다. 산업용기계 및 장비수리업은 84.1에서 91.0으로 6.9포인트 올랐고 가죽가방 및 신발도 5.4포인트 상승했지만, 제조업 23개 업종 가운데 17개 업종은 전월보다 전망이 나빠졌다.
섬유제품은 77.9에서 66.2로 11.7포인트 떨어져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의료용물질 및 의약품도 90.1에서 82.1로 8.0포인트 밀렸다. 몇몇 업종의 반등보다 다수 업종의 부진이 더 넓게 퍼져 있는 셈이다.
설비는 더 돌았지만…‘매출 부진’ 벽에 막힌 중소 제조업
공장 가동은 소폭 늘었다. 6월 중소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5.9%로 전월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중기업은 77.7%에서 78.4%로 0.7%포인트 올랐고 소기업도 71.4%에서 71.6%로 소폭 개선됐다.
일반 제조업 가동률은 76.0%로 전월보다 0.8%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혁신형 제조업은 75.7%에서 75.6%로 0.1%포인트 낮아졌다. 설비 가동이 전반적으로 조금 늘었지만 혁신형 제조업까지 같은 흐름을 보인 것은 아니다.
가동률 상승을 경기 회복으로 곧장 연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업들이 느끼는 경영 부담에 있다. 7월 중소기업의 경영 애로 가운데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항목은 ‘매출 부진’으로 50.7%에 달했다. 절반이 넘는 기업이 제품을 팔지 못하는 문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도 41.1%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업체 간 경쟁 심화는 27.9%, 인건비 상승은 24.7%였다. 설비를 조금 더 돌리고 있어도 판로와 원가 부담이 동시에 누르면 수익성 개선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영업이익과 자금사정, 내수판매 전망은 전월보다 나아졌지만 모두 70~80대에 머물렀다. 수출전망지수는 87.8에서 87.3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중견 제조업에서 수출 기대가 크게 회복된 흐름과 대조적이다.
건설·부동산도 엇갈린 온도…중소 건설은 여전히 70선
건설과 부동산에서도 체감 온도는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중소기업의 8월 건설업 전망지수는 71.1로 전월보다 0.8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기준선과의 격차도 여전히 크다.
서비스업에서는 부동산업 전망이 두드러졌다. 부동산업 지수는 75.2에서 90.5로 15.3포인트 급등했다. 도소매업도 5.9포인트 상승했다. 다만 예술·스포츠·여가관련 서비스업과 수리·기타개인서비스업은 각각 7.4포인트와 5.4포인트 하락해 서비스업 내부에서도 업종별 편차가 컸다.
중견기업 조사에서는 건설업의 자금전망지수가 98.5로 전분기보다 18.1포인트 올랐다. 수출 관련 전망지수도 92.6으로 16.9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업 내수전망 역시 88.2로 13.0포인트 개선됐다. 건설·부동산 분야에서도 기업 규모와 세부 업종에 따라 경기 회복 기대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산업 회복은 아직 ‘확산’보다 ‘선별’
두 조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경기 회복의 속도보다 범위의 차이다.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기대되는 전자부품·통신장비 등 수출 업종에서는 전망이 빠르게 개선됐다. 중견 제조업에서는 수출과 내수, 생산, 영업이익, 자금 사정까지 주요 지표가 동시에 상승했다.
중소 제조업은 상황이 다르다. 평균가동률은 75.9%로 전월보다 높아졌지만 업황 전망은 오히려 악화했다. 공장을 더 돌리고 있어도 매출 부진과 원자재 가격 상승, 경쟁 심화가 겹치면서 체감 회복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경기전망지수를 그대로 놓고 우열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조사 대상과 시점, 지수 체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는 2026년 1월부터 소상공인을 제외한 소기업·중기업으로 모집단이 바뀌어 이전 시계열과도 단절됐다.
그럼에도 두 조사에는 공통된 신호가 있다. 경기전망지수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기준선 100을 밑돌고 있다. 개선 기대가 살아났다고 해도 산업 전반이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반기 산업경기의 관건은 반도체와 AI 중심의 수출 회복 기대가 얼마나 아래로 흘러가느냐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수출 증가가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수주와 매출로 이어지고, 그 흐름이 다시 가동률과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비로소 ‘체감 회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지금의 숫자는 경기 반등의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문제는 그 문턱을 몇 개 업종만 넘어설지, 제조업 생태계 전체가 함께 넘어설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