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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톺아보기] ‘65세 정년’의 역설…늘릴 정년조차 없는 중소기업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제도 사각지대…나이 연장보다 계속고용 설계가 먼저

공장 벽에 걸린 달력에는 퇴직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았다. 쉰아홉이 된 작업자는 내년에도 이곳에 있을지 모른다. 예순이 된다고 반드시 회사를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예순다섯까지 일할 수 있다는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장이 일이 있으면 사람을 붙잡고 주문이 끊기면 사람부터 줄이는 작은 사업장에서 정년은 달력보다 먼 이야기다.

[산업톺아보기] ‘65세 정년’의 역설…늘릴 정년조차 없는 중소기업 - 산업종합저널 FA
콘텐츠 연출 = 본지 (생성형 AI 기반)

정치권에서는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늘리는 논의가 한창이다.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생기는 소득 절벽을 메우고 숙련 노동자를 더 오래 일하게 하자는 취지다. 다섯 해를 더 일할 수 있다는 문장은 따뜻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 숫자를 중소기업 공장 문턱 안으로 들여놓는 순간 사정은 복잡해진다.

향후 5년간 중소기업에서 정년 연장의 영향권에 들어갈 정규직은 148만3,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정년제를 실제 운영하는 사업장에 다니는 사람은 85만5,000명이다. 1∼4인 사업장의 정년제 운영 비율은 13.2%에 불과하다. 5∼9인 사업장도 30.5%다.

그래서 ‘65세 정년’이라는 같은 문장이 노동자마다 전혀 다르게 읽힌다. 정년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5년이 늘어나는 일이다. 정년이라는 울타리조차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늘릴 것 자체가 없다. 법은 나이를 다섯 살 늘리지만 현장은 그 다섯 해를 담아둘 그릇부터 부족한 셈이다.

공장은 이미 늙어가고 있다. 중소기업 임금근로자 가운데 50세 이상 비중은 2015년 31.6%에서 2025년 44.0%로 뛰었다. 젊은 사람이 떠난 자리를 숙련공이 지키는 작업장도 적지 않다. 기계를 다루는 손은 점점 주름지는데 그 손을 몇 년 더 붙잡아 둘 제도는 아직 거칠다.

[산업톺아보기] ‘65세 정년’의 역설…늘릴 정년조차 없는 중소기업 - 산업종합저널 FA
일러스트=산업종합저널 (AI 생성)

기업의 셈법도 단순하지 않다. 숙련공 한 사람이 빠지면 공정이 흔들리는 회사가 있다. 반대로 매출이 그대로인데 인건비만 늘면 새 직원을 뽑기 어려운 회사도 있다. 고령 근로자를 남길지 청년을 새로 뽑을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곳에서 정년 연장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정년 문제는 나이보다 설계에 가깝다.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지보다 어떤 일을 맡길지부터 정해야 한다. 생산성과 역할 변화에 맞는 임금체계를 만들고 숙련을 청년에게 넘길 통로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버틸 수 있도록 세제와 재정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공장의 기계음이 하나둘 잦아든다. 작업자는 장갑에 묻은 기름을 털고 내일 다시 출근할 준비를 한다. 그에게 더 절실한 것은 예순인지 예순다섯인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이 장갑을 낄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65세 정년은 아직 법전에만 있는 숫자다.
박재영 기자 기자 프로필
박재영 기자
brian@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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