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산업의 규제 부담을 줄이기 위한 12개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핵심은 규제를 일괄적으로 푸는 데 있지 않다. 기술 변화 속도와 실제 위험 수준에 맞춰 승인 절차와 관리 방식을 다시 짜자는 데 무게가 실린다.
경기연구원이 경기도 의뢰로 수행한 ‘경기도 첨단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선 과제 연구’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바이오, 첨단 모빌리티, AI, 로봇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기업 연관성, 법령 개정 필요성, 정책 파급효과를 기준으로 과제를 선별했다.
![[해설] 경기도 첨단산업 규제개선, ‘완화’보다 위험도 따라 다시 설계하는 일 - 산업종합저널 전자](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9/02/thumbs/thumb_520390_1788312966_60.jpg)
그래픽=산업종합저널(생성형 AI 활용), 자료=경기연구원 ‘경기도 첨단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개선 과제 연구’
경기도가 규제개선의 주요 무대로 꼽히는 배경에는 산업 집적도가 있다. 2024년 기준 도내 GRDP에서 제조업 비중은 39.0%였고, 경기도는 전국 제조업 GRDP의 35.1%, 제조업 사업체의 31.9%를 차지했다. 고위·중고위기술산업군 고용 비중도 도내 전체의 51.1%로 집계됐다.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산업의 수출 비중도 높다. 2026년 4월 경기도 수출은 약 274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94.9% 증가했고, 반도체 수출은 약 168억달러, 컴퓨터 수출은 15억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특정 월의 수출 증가율만으로 첨단산업 전반의 성장세를 판단하기보다 업종별 수출 여건과 기저효과를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제도는 느리고 기술은 빠르다
보고서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문제는 신기술의 발전 속도와 제도 변화 사이의 시차다. 기존 법령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사업모델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면 기업은 시장 진입 이전부터 승인 지연과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
연구진은 성과를 기준으로 규제 방식을 검토하고, 사전승인 절차는 더 유연하게 운영하는 대신 사후 점검을 보강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위험이 낮거나 운영 방식이 반복되는 영역에는 부담을 줄이고, 안전·보안·건강과 맞닿은 분야에는 필요한 관리 장치를 유지하는 차등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접근은 규제의 존폐보다 적용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모든 사업에 같은 절차를 반복하기보다 기술의 특성과 위험도를 가려 관리 강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반도체에서 로봇까지, 다른 듯 닮은 과제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에서는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비공개 승인 절차를 손보는 방안이 과제로 제시됐다. 다만 근로자 건강장해 우려 물질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안전장치를 유지하는 방향이다. 전자게시대 설치 구역을 보행 중심 공간까지 넓히는 경기도 옥외광고물 조례 개정도 함께 담겼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미성년자 대상 소비자직접시행(DTC) 유전자검사와 첨단바이오의약품 신속처리 제도를 다뤘다. 전자는 일정 조건에서 별도 근거자료 요건을 갈음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손보는 내용이고, 후자는 중증 비가역적 질환과 난치성 질환 치료용 의약품까지 신속처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다.
첨단 모빌리티에서는 저위험 반복비행 드론의 장기 비행승인 확대, 비가시권 비행 때 관찰자 배치 기준 조정, 방제·방역용 드론의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 범위 확대 등이 포함됐다. 전기차에서는 차량과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제가 제시됐다.
![[해설] 경기도 첨단산업 규제개선, ‘완화’보다 위험도 따라 다시 설계하는 일 - 산업종합저널 전자](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9/02/thumbs/thumb_520390_1788312971_66.jpg)
그래픽=산업종합저널(생성형 AI 활용), 자료=한국무역협회
AI 분야에서는 여러 제도로 흩어진 규제샌드박스의 운영 구조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단기적으로 AI 특화 실증특례를 마련하고, 중장기적으로 독립된 AI 규제샌드박스의 법적 근거를 검토하는 방안이다. 공개 제한 공간정보는 물리적 망 분리 중심에서 기술적 통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담겼다.
로봇 부문에서는 안전인증 기준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부품 변경에 대해 변경인증 부담을 줄이고 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실시간 감시와 비상 원격제어 기능을 갖춘 주차로봇에는 상주 관리인 배치 의무를 조정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12개 과제보다 중요한 실행 구조
이번 연구의 의미는 개별 과제 목록보다 규제개선의 작동 방식을 제안했다는 데 있다. 산업 현장의 애로를 일회성 민원으로 처리하지 않고, 발굴과 선별, 중앙정부 건의, 실증, 제도 정비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도와 시군, 기업의 규제 애로를 한곳에서 접수·관리하는 체계를 제안했다. 중앙정부와 경기도, 시군,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해 법령·지침 개정이 필요한 사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방안도 담았다.
규제샌드박스는 단순한 특례 수단을 넘어 제도 개선의 근거를 축적하는 도구로 제시됐다. 실증 과정에서 확보한 안전성·운영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규제 개선 필요성을 입증하고, 이를 중앙정부 건의와 법령 정비로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결국 경기도의 과제는 규제를 얼마나 많이 없애느냐보다 산업 현장의 변화와 위험 수준을 얼마나 빠르게 제도에 반영하느냐에 있다. 첨단산업 정책의 경쟁력은 특례 하나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술 변화에 맞춰 규칙을 고칠 수 있는 상시적 실행 체계를 갖추는 데서 갈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