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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반도체·AI 전력난, 고속도로가 해법 될까

경기연구원 ‘에너지 고속도로’ 제안…서해안 태양광과 경기 남부 잇는 송배전·ESS 구상

반도체 시대의 전력난은 발전소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공장까지 이어지는 ‘전기길’이 제때 마련되지 않으면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고도 산업 현장으로 보내지 못할 수 있다. 경기연구원이 제안한 ‘에너지 고속도로’는 새 송전선의 경로를 찾는 대신 이미 확보된 고속도로 회랑을 활용해 이 병목을 풀자는 구상이다.

[ISSUE] 반도체·AI 전력난, 고속도로가 해법 될까 - 산업종합저널 에너지
개념 시각화 = 산업종합저널 (AI 활용)

경기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반도체 시대의 전력난, 고속도로 위에서 답을 찾다’ 보고서에서 도내 고속도로를 송배전망과 태양광 발전,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결합된 에너지 인프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력난의 또 다른 병목, ‘길과 시간’
경기도는 전국 전력 사용량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소비 지역이다. 지난 10년간 전력자립도는 29.6%에서 62.5%로 높아졌고, 태양광 설비도 ‘경기도 에너지비전 2030’ 목표의 두 배를 넘어섰다.

문제는 이제 발전소의 숫자보다 생산한 전기를 어디로 흘려보내느냐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수요지까지 안정적으로 연결할 계통을 갖춰야 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가 본격 가동되면 2050년 경기도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약 28만5천 GWh로 현재의 두 배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원자력발전과 서해안 초고압직류송전망이 단계적으로 보강될 예정이지만, 대규모 전력망이 완성되기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공급 시차가 문제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같은 한계에 부딪힌다. 보고서는 경기도의 태양광 잠재량을 57.7 GW로 추산했다. 현재 보급량의 20배를 넘는 규모다.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는 법 개정으로 상당 부분 완화됐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발전 전력을 받아줄 송전·배전망의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다.

새 송전선로를 건설하려면 경과지 선정부터 토지 보상, 주민 협의, 인허가까지 거쳐야 한다. 발전소 건설과 수요 증가의 속도를 전력망 확충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병목도 입지 규제에서 계통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고속도로 840 km를 전력 회랑으로
경기연구원이 주목한 것은 도내 약 840 km에 이르는 고속도로다. 이미 조성된 선형 부지를 따라 지하 송배전 관로를 구축하면 대규모 토지 매입과 신규 경과지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핵심 연결축은 서해안 간척지와 경기 남부 산업지대다. 시화·화옹·평택호 일대에서 생산할 약 3 GW 규모의 태양광 전력을 서해안고속도로와 평택시흥고속도로를 따라 반도체 산업이 밀집한 경기 남부로 보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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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연출 = 본지 (생성형 AI 기반)

경기연구원은 기존 방식으로 평균 13년가량 걸리는 송전선로 건설 기간을 고속도로 회랑을 활용하면 5~7년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될 용인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와 송전망 건설 사이의 시차를 좁히겠다는 취지다.

다만 고속도로가 모든 송전망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전력망이 완성되기 전까지 부족한 연결망을 보완하고 신규 송전선 건설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 회랑에 가깝다. 이 구상의 핵심은 발전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력을 보낼 길을 앞당겨 확보하는 데 있다.

도로변 태양광과 ESS로 계통 여유 확보
고속도로는 전력 이동 경로인 동시에 발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기연구원은 비탈면과 성토부, 방음벽 등 도로 주변 유휴부지에 588 MW 규모의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예상 연간 발전량은 약 773 GWh다.

별도의 대규모 부지를 개발하지 않고 기존 기반시설의 유휴공간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토지 이용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차량과 물류가 이동하던 도로를 전력 생산과 수송이 함께 이뤄지는 복합 기반시설로 확장하는 구상이다.

휴게소와 나들목 등 주요 거점에는 4 MW급 ESS를 배치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낮에 생산한 태양광 전력을 저장한 뒤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 공급해 배전선로의 부담을 분산하는 방식이다.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ESS를 연계할 경우 기존 배전선로가 수용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 용량은 14 MW에서 18 MW로 늘어날 수 있다. 대규모 송전망이 완공되기 전에도 지역 계통의 여유를 확보하고, 계통 제약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발전량을 줄이려는 것이다.

고속도로 관로가 전력을 보내는 ‘길’을 확보하는 수단이라면 ESS는 송전망이 들어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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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재구성 = 본지 (AI 도구 활용)

주민 수용성, 투자 참여로 풀 수 있을까
송전선로와 태양광 사업에서는 기술적 타당성만큼 주민 수용성이 중요하다. 경기연구원은 주민이나 도민이 사업비의 4% 이상을 투자하고 발전 수익을 배당받는 주민참여형 모델을 제안했다.

지역 주민을 시설의 영향을 받는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업 수익을 공유하는 참여자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보고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의 경우 이격거리 규제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어 입지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주민참여가 갈등을 자동으로 해소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 조건과 수익 배분 방식이 투명해야 하고 사업의 환경·안전 영향에 관한 설명과 협의도 뒤따라야 한다. 참여 비율을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가 사업 결정과 수익 배분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지가 수용성을 좌우할 수 있다.

서화성 시범사업, 구상에서 사업으로
사업 실현을 위해서는 경기도와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경기도가 정책과 사업계획을 총괄하고 국가 전력망 계획 반영을 추진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한국도로공사는 도로 부지와 관로 활용 기반을 제공하고, 한국전력공사는 계통 접속과 송배전망 운영을 맡는 방식이다.

첫 단계로는 서해안 간척지 태양광과 경기 남부 수요지를 연결하는 ‘서화성 집전 피더망’이 제안됐다. 고속도로 송배전망과 도로변 태양광, 거점형 ESS, 주민참여형 수익공유 모델을 함께 적용해 사업성을 확인하는 시범사업이다.

김점산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와 AI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조건으로 적기 전력 공급과 친환경성을 꼽았다. 고속도로를 활용한 전력망이 기존 송전선로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민 갈등과 토지 보상 부담을 줄일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으로 옮기려면 넘어야 할 문턱도 있다. 도로 지하 관로의 시공 방식과 안전성, 유지관리 책임, 사업비 분담, 설비 소유권과 운영주체를 구체화해야 한다. 국가 전력망 계획과의 정합성, 한전 계통 접속 가능성, ESS의 경제성도 검증 대상이다.

결국 에너지 고속도로의 성패는 고속도로에 전력망을 설치할 수 있느냐보다 이를 누가 건설하고 운영하며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달렸다. 서화성 시범사업은 막힌 전력길을 기존 도로에서 찾는 발상이 실제 반도체·AI 전력 수요에 대응할 기반시설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가르는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허은철 기자 기자 프로필
허은철 기자
echheo@industry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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