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첨단 반도체의 국내 생산기반 확충을 계속 추진하는 한편, 피지컬 AI 구현에 필요한 데이터·로봇·클라우드·엣지 컴퓨팅·통신·전원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향으로 반도체 전략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회도서관이 최근 발간한 ‘일본의 2026 반도체·디지털산업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올해 6월 ‘반도체·디지털산업전략’을 개정했다. 2021년 처음 수립하고 2023년 한 차례 개정한 데 이은 두 번째 개정이다.
개정 전략은 AI 에이전트와 멀티모달 AI, 세계 모델, 피지컬 AI의 발전과 산업 현장 적용 확대에 대응해 AI와 반도체를 국가 경쟁력 및 경제안보를 뒷받침하는 통합 산업기반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일본이 범용 대규모 AI 모델 경쟁에서 선도국에 뒤처진 현실을 인정하면서 제조업·로봇·센서·제어기술과 산업 현장 데이터를 결합하는 영역을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웹 데이터와 막대한 계산자원을 기반으로 한 초거대 언어모델 경쟁에서는 뒤처졌지만, 제조 현장의 고품질 데이터와 제어·센싱·구동 기술, 부품·소재·장치 공급망, 품질·안전 설계 역량을 활용하겠다는 판단이다.
현장 데이터에서 AI 로보틱스로
일본이 전략의 핵심 축으로 제시한 피지컬 AI는 이미지·음성·영상·센서 데이터를 통합해 현실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 결과를 실제 기계의 행동으로 연결하는 AI를 말한다. 적용 범위는 산업용 로봇을 넘어 자율주행차, 무인항공기, 무인선박, 자동 건설장비 등으로 넓어질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제조·물류·의료·방재 등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AI가 학습과 추론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정비하는 ‘AI-Ready화’를 강조했다. 현장 데이터를 정제해 분야별 특화 AI와 로봇 기반 모델을 개발하고, 실제 환경과 시뮬레이션에서 검증한 결과를 다시 데이터와 모델 개선으로 연결하는 순환구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피지컬 AI는 모델 성능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로봇과 기계 설계, 센서와 제어, 데이터 수집, 안전 검증, 유지보수, 통신·전력 시스템을 함께 갖춰야 실제 산업 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다.
클라우드·엣지와 반도체 연결
일본의 전략은 피지컬 AI 확산에 필요한 컴퓨팅·통신·전력 기반 확충까지 포함한다. 대규모 AI 모델 학습과 시뮬레이션, 데이터 통합은 클라우드가 맡고 로봇·자율주행차·드론처럼 즉각적인 판단과 제어가 필요한 기기는 엣지에서 처리하는 역할 분담 구조다.
클라우드에는 고성능 AI 반도체와 첨단 메모리, 대규모 전력 공급, 냉각 인프라, 고대역폭 통신망이 필요하다. 엣지에서는 저지연 통신과 안정적인 전원, 전력·아날로그 반도체, 기능안전 및 페일세이프 설계가 중요해진다.
일본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의 집적과 적정 입지를 지원하고 전력·통신·부지·녹색전환(GX)을 함께 정비할 방침이다. 전광자 네트워크(APN), 광전융합, 해저케이블 등 차세대 통신기술도 강화 대상에 포함했다.
반도체 정책도 첨단 로직 생산기반에만 머물지 않는다. 첨단 메모리와 레거시 반도체의 공급능력, 전력·아날로그 반도체, 설계 생태계, 제조장비·부품·소재·후공정을 아우르는 공급기반 강화가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기존 지원계획과 결합
2030년도까지 AI·반도체 분야에 10조 엔 이상을 지원하는 계획은 올해 전략 개정 때 새로 결정된 사안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2024년 11월 마련한 ‘AI·반도체산업기반 강화 프레임’에 따른 중장기 지원계획으로, 개정 전략은 이를 AI·데이터·로봇·통신·전력 정책과 연계하는 성격이 강하다.
일본 정부는 이 프레임에 따라 2030년도까지 7년간 10조 엔 이상의 공적지원을 제공하고, 향후 10년 동안 50조 엔 이상의 민관투자를 유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약 160조 엔의 경제 파급효과도 제시했지만 확정 투자액이나 실적이 아닌 정책 추진에 따른 기대효과다.
AI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세계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확보하고 2040년 20조 엔 규모의 시장을 획득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 국내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매출을 2040년 40조 엔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두 수치 모두 현재 시장 규모나 확정 성과가 아닌 일본 정부의 중장기 정책 목표다.
산업계의 과제
일본의 올해 전략은 반도체를 공장과 생산량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현장 데이터와 AI 모델, 로봇, 클라우드·엣지, 통신·전력, 반도체를 연결해 AI의 산업 현장 구현과 공급망 강화를 함께 추진하려는 접근이다.
이 전략에 비춰보면 한국 산업계에서도 제조·자동차·배터리·조선·물류 등의 현장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정비하고, 이를 AI·로봇·엣지 반도체·통신 인프라와 연결하는 방안이 주요 과제로 부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