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부의 일부를 사회와 공유하자는 구상은 직관적으로 매력적이다. 시민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직접 체감할 수 있고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건설로 영향을 받는 지역을 지원할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자동화로 일자리가 바뀌는 노동자의 전환교육과 재취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제도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다. ‘AI가 돈을 버니 국민에게 나누자’는 공식만으로는 무엇을 대상으로 삼고 누구에게 얼마를 돌려줄지 정할 수 없다.
AI가 만든 이익, 어디까지가 AI 몫인가
생성형 AI 모델 기업만 포함할지, 반도체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플랫폼, 로봇까지 범위를 넓힐지에 따라 대상은 크게 달라진다.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인 제조업과 금융·유통기업의 이익 가운데 어느 부분이 AI 기술에서 비롯됐는지를 분리하기도 어렵다.
AI 산업은 하나의 기업이나 하나의 기술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 기업이 연산 장치를 만들고 클라우드 기업이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며 데이터센터가 이를 운영한다. 플랫폼과 제조기업은 AI를 각자의 사업에 적용한다.
특정 AI 서비스의 매출만 대상으로 삼으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빠질 수 있다. 반대로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면 AI를 활용하는 상당수 기업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상적인 투자수익과 별도로 환원할 몫을 어떻게 구분할지도 문제다. AI 기업은 연구개발과 데이터센터, 반도체 구매 등에 막대한 초기 자본을 투입한다. 성공한 기업의 이익만 본 뒤 투자 당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부담을 추가하면 기업의 비용 계산도 달라질 수 있다.
공공 지분 방식이라면 쟁점은 더 늘어난다. 기업가치를 어느 시점에 평가할지, 공공이 의결권을 어디까지 행사할지, 지분 가치가 떨어질 경우 위험을 누가 부담할지도 정해야 한다. 샌더스 법안은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AI 기업의 지분 50%를 펀드로 이전하고 별도 위원회가 이를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호황기에 약속한 배당, 불황기에도 가능한가
산업의 변동성도 따져야 한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투자는 경기와 수요에 민감하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에는 세수와 기업이익이 늘 수 있지만 업황이 꺾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근거로 고정적인 현금배당을 약속하면 불황기에 다른 재정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일회성 재정 환원과 지속적인 기본배당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현금 지급은 시민이 정책 효과를 직접 체감하기 쉽다. 반면 국부펀드나 공공기금은 자산을 축적해 장기적인 운용수익을 만드는 방식이다.
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도 없다. 기금의 원금을 유지하고 운용수익 일부를 시민에게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경기 변동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수입을 토대로 고정적인 지출부터 약속하지 않는 것이다.
![[기획②] AI 공유부의 설계…‘배당액’보다 먼저 따질 것 - 산업종합저널 전기](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9/17/thumbs/thumb_520390_1789601128_85.jpg)
AI 산업의 이익과 공공 인프라·지역사회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표현한 만평. 생성형 AI로 제작.
환원 요구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투자 위축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AI 산업의 핵심 자산인 컴퓨팅 인프라와 연구개발 자본은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다.
기업이 투자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세금이나 지분 이전을 사후적으로 요구받는다고 판단하면 각국의 시장 규모와 인재, 전력 공급, 세제와 규제 여건을 비교해 투자 지역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다만 실제 투자 결정에는 여러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환원 의무 하나만으로 투자 이동을 단정할 수는 없다.
공공 지원을 받은 기업의 성과를 전적으로 사적 결과로만 보기도 어렵다. 연구개발 지원과 공공데이터, 세제 혜택, 전력망과 통신망, 규제 특례에는 공공 자원이 들어간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은 전력계통과 토지 이용, 생활환경의 부담을 함께 감당할 수 있다.
AI 공유부가 혁신의 보상을 벌주는 제도가 아니라 공공 지원과 사회적 비용에 상응하는 환원 원칙을 만드는 장치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이 먼저 계산해야 할 것은 ‘배당액’이 아니다
한국에서 AI 공유부를 제도화하려면 시민에게 얼마를 지급할 것인지부터 정하기보다 AI 산업에 투입되는 공공 자원의 규모와 수혜 주체, 지역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연구개발 지원과 GPU·클라우드 이용 지원, 공공데이터, 부지·세제 혜택, 전력계통 접속, 송전망 투자, 규제 특례 등을 사업별로 살펴보는 작업이 출발점이다.
그래야 기업이 이미 부담하는 세금과 새로 요구할 환원 의무가 겹치는지도 판단할 수 있다. 법인세와 별도 부담금, 지역기금 출연이 중첩되면 이중부담 논란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대규모 공공 인프라와 특례를 제공하면서 아무런 환원 조건을 두지 않는다면 공공이 부담한 비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논란이 남는다.
공공이 무엇을 제공했고 기업과 지역이 무엇을 얻고 부담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이유다.
이익 난 뒤 걷기보다 투자 전에 정한다
환원 방식도 기업이 성공한 뒤 추가 부담을 요구하는 사후 환수만이 답은 아니다. 공공 인프라와 특례를 제공하는 투자 단계에서 환원 조건을 미리 정하는 방식은 정부와 기업 모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나 반도체·AI 프로젝트에 공공 지원을 제공할 경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지역기금 출연이나 공공 컴퓨팅 자원 제공, 인력 양성,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조달 등을 이행하도록 약정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투자 전에 비용을 계산할 수 있고 정부와 지역사회는 어떤 편익을 돌려받을지 알 수 있다. 사업이 성공한 뒤 새로운 부담을 부과하는 방식보다 기준을 사전에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지역별 부담과 편익을 연계할 수도 있다. 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지역에는 전력망 안정과 주민 편익을 지원하고 공공 연구개발 지원을 받은 기업에는 인력 양성이나 공공 컴퓨팅 자원 제공 등을 조건으로 둘 수 있다.
모든 기업에 같은 부담률을 적용하기보다 제공받은 공공 지원의 규모와 사업 특성,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따지는 접근이다.
확보한 재원, 어디에 먼저 쓸 것인가
환원 재원을 어디에 사용할지도 별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AI 전환 과정에서 직접 발생하는 비용과 충격을 줄이는 데 우선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중소 제조기업의 AI 도입과 현장 교육, 자동화 영향을 받는 노동자의 재직자 훈련과 재취업, 지역대학과 직업교육기관의 인재 양성, 공공 컴퓨팅 인프라, 데이터센터 입지 지역의 전력망 안정과 주민 편익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확보한 재원을 다시 AI 전환에 적응하기 어려운 기업과 노동자, 지역사회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단기 소비로 끝내지 않고 다음 산업 전환을 위한 자산으로 축적한다는 의미도 있다.
재원이 안정적으로 쌓이고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뒤에는 기금 운용수익 일부를 시민에게 지급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현금 지급과 공공투자를 양자택일로 볼 필요는 없다.
초기에는 전력·환경·고용 부담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 마련되면 시민 환원을 확대하는 단계적 설계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AI 공유부는 ‘배당’보다 규칙의 문제다
AI 공유부의 본질은 돈을 나눌 것인지에만 있지 않다. 기술 발전의 편익과 비용을 누가 어떤 순서와 원칙으로 나눌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AI 산업은 민간의 자본과 기술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 연구개발과 데이터, 전력·통신망, 교육을 통해 길러진 인재 등 사회가 쌓은 기반 위에서 성장한다. 동시에 막대한 자본을 위험에 투입하고 기술을 개발한 기업에도 그에 맞는 보상이 필요하다.
환원 의무가 지나치면 투자와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 반대로 공공이 제공한 자원과 지역사회가 떠안은 부담을 외면하면 산업 확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낮아질 수 있다.
한국형 AI 공유부의 출발점은 성공한 기업의 이익을 뒤늦게 나누는 데 있지 않다. 공공이 무엇을 제공하고 기업이 어떤 조건으로 환원할지를 투자 단계에서 정하는 일이다.
AI 시대의 사회계약은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혁신의 속도를 꺾지 않으면서 그 편익이 사회 전체로 이어지는 규칙을 세울 때 AI가 만든 부는 일회성 배당을 넘어 다음 성장을 떠받치는 공동 자산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