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급 인력 해외 유출이 지속되며 경제적 손실과 기술 자립 기반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산업의 성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 속에, 단순 유출 억제를 넘어 인재 순환을 유도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17일 발표한 '한국의 고급인력 해외유출 현상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 규모가 –0.36명으로 OECD 38개국 중 35위에 해당한다. 이는 룩셈부르크(+8.92명), 독일(+2.13명), 미국(+1.07명) 등 주요국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2만5천 명이던 해외 유출 전문인력은 2021년 12만9천 명으로 4천 명 가량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유입 외국인 전문인력은 4만7천 명에서 4만5천 명으로 줄며 두뇌수지 적자폭이 7만8천 명에서 8만4천 명으로 확대됐다.
과학기술 인재도 순유출… 세계 평균보다 낮은 수준
SGI는 학술 연구자 이동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인재 순유출 상태에 있음을 지적했다. 국내 과학자의 해외 이직률은 2.85%로, 외국 과학자의 국내 유입률(2.64%)보다 0.21%포인트 높았다. 이 같은 격차는 조사 대상 43개국 중 33위로 하위권에 속하며, 독일(+0.35%p), 중국(+0.24%p), 일본(–0.14%p) 등과 비교해 열위에 놓여 있다.
보고서는 “유능할수록 떠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연공서열식 보상체계, 실적 중심 단기 평가, 부족한 연구 인프라와 국제협력 기회의 제약 등을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고급인력 1명 유출 시 국가 손실 5억 원 이상
전문인력의 해외 이탈은 경제적 비용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SGI 분석에서도 국내 대졸자의 평생 공교육비는 2억1천483만 원에 달하며, 해당 인재가 해외에서 경제활동을 할 경우 발생하는 세수 손실은 약 3억4천67만 원에 이른다. 김천구 SGI 연구위원은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성인이 된 후 외국 납세자가 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한국 납세자가 선진국 인적자원 형성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성과중심 보상·유연한 근로제 필요
SGI는 보고서 말미에서 ▲성과연동형 급여 체계 강화 ▲주 52시간제 예외 등 유연한 근로 제도 도입 ▲연구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 강화 등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성과와 무관한 승진 구조는 젊은 인재의 이탈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최상위 저널 게재나 핵심 특허 확보 등 탁월한 연구성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분야 인력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제약을 유연하게 적용해 몰입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브레인 게인 전략으로의 전환 강조
SGI는 단순 유출 억제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인재 유입과 재귀를 촉진하는 ‘브레인 게인(Brain Gain)’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AI 세계 3대 강국 도약과 ABCEDF 산업(인공지능, 바이오·헬스, 콘텐츠·문화, 방위산업·우주항공, 에너지, 제조업) 육성 전략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혁신 인재 확보가 핵심”이라며 “글로벌 인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순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상의는 최근 우수 외국인 기술인력 유치를 위한 비자 제도 완화와, 해외 현지 맞춤형 직무 교육 프로그램 도입 등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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